이도의 ‘욕망’과 가리온의 ‘책임’에 균형점. 그리고 소셜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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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 훌쩍 지나간 2012년의 2월, 문득 지난 연말을 즐겁게 해주었던 ‘뿌리깊은 나무’가 생각납니다. 이는 요즈음의 드라마 중 본인 취향의 드라마가 없는 이유도 있지만, 하루하루 마주하고 있는 생활이 ‘뿌리깊은 나무’를 보며 느꼈던 그 무엇을 끊임없이 상기시키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뿌리깊은 나무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장면 중 하나는 이도와 가리온의 정유담 대화 장면이지요. 이 장면에서는 정치에 대해 다른 이념을 가진 두 인물이 격렬하게 본인의 신념을 펼칩니다. 그 내용은 백성의 욕망, 정치와 균형, 책임과 권한에 대한 깊은 이야기들을 깊숙이 건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들은 매일 경험하고 깨우치고 있는 ‘소셜미디어’의 신념, 가치 그리고 이슈들과도 고스란히 겹쳐지기에 더욱 더 ‘뿌리깊은 나무’가 떠오르는가 봅니다.

 

이도는 글자를 통해 글로써 소통하는 ‘자로’를 열려 하였고, 가리온은 백성들의 책임 없는 욕망을 자극하는 책임회피적 발상일 뿐이라고 합니다. 이는 요즘 우리가 접하는 소셜미디어 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서도 한 번쯤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도의 ‘글자’와 우리의 ‘소셜미디어’

이도는 글자를 통해 백성들이 ‘글’로써 이야기 할 수 있는 시대를 열고자 했습니다. 또한, 기득권을 견제하는 세력으로 성장하기를 기원했지요. 왜냐하면, 당시 사대부의 기득권은 ‘글자’에서 오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가리온은 백성이 질 수 없는 ‘책임’에 대해 꼬집었습니다. 감히 말하건대, 이도의 ‘글자’는 우리의 ‘소셜미디어’ 라고 생각합니다. 이도가 열고자 했던 글로써 이야기 하는 시대를 지나, 우리는 스스로의 ‘미디어’로 이야기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우리는 기득권을 견제하는 세력으로 성장할 기회도 가지고 있지요.

 

불 과 5년 전만 하여도, 소셜 미디어의 급부상은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온라인 매체의 발달로 종이 신문의 발행부수가 줄어들고 이로 인해 언젠가 종이 신문의 존재가 사라질 것이라는 견해는 그 당시에도 있었습니다.

 

당시, 대학입학 면접 때, 신문사 기자가 되고 싶다던 저에게 ‘신문사 요즘도 어려운데 왜 굳이 신문사를 가려고?’ 하는 답변을 교수님께서 해 주셨으니까요. 하지만, 개인이 미디어가 되어 개인의 생각과 생활, 그리고 가치가 메시지가 되는 소셜미디어의 존재는 불과 5년 전만해도 상상 하지 못했던 패러다임이며 지금도 시행착오를 겪고 진행되어 가는 시대의 패러다임입니다. 이러한 소셜 미디어는 현재 존재하는 기득권 언론매체에 대한 대응으로 성장 할 것입니다.

 

한 이슈에 대한 개개인의 가치판단과 생각이 반영되어 있는 사실 그 자체의 ‘팩트’ 보다 사실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과 판단’이 더 중요시 되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절대 진리인 ‘이데아’ 보다 사회적 동물들의 생각이 더 관심 가는 패러다임이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가리온의 ‘책임’과 ‘우리’

가리온의 말대로 ‘권한’을 나누어 가졌으니 ‘책임’ 또한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생각과 이야기로 채운 소셜미디어에서 우리는 어떠한 책임을 가져야 할 까요. 특히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대중들과 관계들’을 만들어가는 일을 업으로 사는 우리가 가져야 하는 역량과 책임은 무엇이 있을까 생각합니다. 크게 3 가지 정도의 가치가 생각납니다. ‘진정성’, ‘공감’, ‘ 판단’ 이 세 키워드를 마음속에 지녀야 소셜 미디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진정한 관계들을 형성해 나 갈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먼저, 우리는 ‘공감’해야 합니다. 소셜 미디어는 ‘ 지하철 1호선이 폭설로 운행을 멈추었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불편을 겪은 사람들이 이야기 되는 곳 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대중들에게 ‘정보’를 주는 것을 넘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여 주는 자세를 취해야 서로를 바라봐주는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진심’을 다해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오묘하게도 잘 보이지 않으면서도 쉽게 보이기도 합니다. 어느 날, 강아지를 좋아하지 않는 본인에게 어떤 이가 던진 한 마디가 있었습니다. ‘개도 자기 싫어하는 사람은 알고 안 가.’ 감정이 있는 동물이기에 동물조차도 상대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데, 우리 사람은 얼마나 더 자연스레 상대의 태도와 마음을 느끼게 될까요. 그렇기에 우리의 이야기를 하는 공간인 소셜미디어에서 진정성을 잃은 대화를 한다면, 그 사람은 한눈에 ‘타인’으로 인식될 것이며 그 사람의 말은 클릭 한번 하지 않고 넘어가는 배너광고 취급을 받을 수 있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우리의 판단’ 입니다. 대중과의 관계를 만들어가고 관리해가는 사람으로서 소셜 미디어는 잘 가꾸어가야 할 나무와도 같은 것입니다. 나무는 보기에는 아름다워 보여도 필요치 않은 가지는 잘라주어야 하며, 뿌리가 깊숙이 내리기 위해서는 단단히 서 있을 수 있도록 버팀목을 마련해 주어야 큰 나무로 성장합니다. 만약, 우리가 기업의 단기적인 브랜드 노출을 위해서 마구잡이로 정보를 흘려 보내 미디어를 어지럽힌다면 소셜 미디어라는 나무는 ‘바이럴’ 이라는 홍수에 떠내려가 버릴 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책임을 위해 쓰는 지혜..

이도의 ‘글자’ 덕분에 우리는 이제 우리의 미디어로 스스로의 이야기를 메시지로 공유 할 수 있는 지금을 마주했습니다. 매일 새로운 이용자가 늘어나고 그 영향력을 키워가는 우리의 미디어인 소셜미디어에 대해 앞으로는 가리온이 말한 ‘책임’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책임없는 권한은 욕망의 한 종류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지혜를 욕망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책임을 위해서도 사용 할 수 있는 우리의 모습을 기대 해 봅니다. 그런 자세만이 우리가 진정 기존 매체를 견제하고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첫 시작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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