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쉬(Push)가 너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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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 드로잉 교본은 대개 얼굴의 비례에 대해 가장 먼저 설명한다. 화가가 연필을 잡고 캔버스에 스케치를 할 때, 이목구비 하나하나를 제대로 그리더라도 올바른 위치에 배치하지 않으면 전체 균형이 안 맞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얼굴에 숨어있는 정삼각형의 법칙이다. 사람 얼굴에 정삼각형이 있었던가? 분명히 존재한다. 양쪽 눈끝과 아랫입술의 끝이 이루는 정삼각형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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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그레이스 켈리와 제임스 딘. 양쪽 눈끝과 아랫입술이 이루는 정삼각형 법칙은 사람 얼굴을 실제로 구성하는 원리다.

아름다운 얼굴을 그릴 때 유념할 법칙이 더 있다. 미간의 적절한 너비는 눈의 너비와 같다. 이보다 짧으면 미간이 좁아 보이고 넓으면 역시 어색하다. 아랫 입술에서 턱선까지의 거리도 눈의 너비와 같다. 코끝에서 윗입술까지 거리는 눈 너비의 정확히 절반으로 잡는다. 다문 입의 높이도 눈 너비의 절반으로 그린다. 미간이 너무 좁다든가, 입이 눈과 너무 멀게 그리는 것이 흔한 실수인데 얼굴 구성의 몇 가지 법칙을 생각하면 이목구비를 제대로 배치할 수 있다.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에 사람만한 소재가 없다. 미술에서 사람을 빼면 별로 남는 게 없을 정도다. 사진가가 촬영을 할 때도 사람만한 소재가 없다. 모든 직업에게 그렇듯 디자이너에게도 마찬가지다. 디자이너가 그 역할을 잘 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경험을 넓고 깊게 이해해야 한다.

사람의 생활방식이 과거 문명의 어느 때보다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제 버스나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은 대부분 스마트폰을 본다. 사람들이 친구와 대화하고, 뉴스를 읽고, 이웃의 안부를 묻고, 음악을 즐기는 방법이 최근 몇 년 사이 완전히 달라졌다. 전화가 대중화됐을 때처럼, 컬러 TV가 보급됐을 때처럼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작은 화면을 만지면서 사람들은 묘한 짜릿함과 함께 삶이 스타일리쉬해졌음을 느낀다.

스마트폰 중독이라는 말도 등장했다. 미국에선 스마트폰 없이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디지털 디톡스 운동도 생겨났다. 배우자가 아이폰을 손에서 놓지 못해 이혼하는 사례도 있다. 어떤 사람들이 슬롯머신이나 포커, 게임에 중독되듯이 이메일이나 메시지, 페이스북의 뉴스피드나 좋아요 알림 등을 자제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스마트폰의 ‘푸쉬’(push)는 사용자가 다른 일을 하다가도 스마트폰을 보도록 강력히 권하는 기능이다. 몇번 푸쉬를 경험해본 사람은 ‘딩동’ 알림이나 ‘부르르’ 진동을 외면하기 힘들다. 일상 속에서 가벼운 환청을 겪는 사람도 있다.

사람이 무언가에 집중하다가 외부 요인으로 방해를 받는 건 본래 자연스러운 일이다. 누군가 자기 이름을 부르거나, 방문객이 ‘똑똑’하고 방문을 두드릴 때 주위를 환기하는 정도는 우리 뇌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사실 우리 뇌는 노크 소리가 들리면 궁금해서 못 견딘다. 이는 우리 뇌의 ‘도파민(dopamine) 시스템’ 때문이다.

도파민은 사람의 뇌가 호기심을 갖고 뭔가를 추구하거나 욕망하는 모든 종류의 지적 활동에 관여한다. 생각하고, 움직이고, 먹고, 잠자는 등 모든 행위를 ‘원하도록’ 한다. 도파민이 없으면 배고파도 음식을 입에 가져가지 못한다.1 한마디로 사람이 자연 세계에서 생존하는데 필수적이다. 문 밖의 노크라는 ‘누군지 알 수 없음’과 그 시기의 ‘예측할 수 없음’은 뇌에서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콸콸 분비되도록 밀어부친다(push). 도파민은 문 밖에 서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내도록 행동하게 한다.

내가 갖는 의문은 다음과 같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는 현대인들의 삶에 이전보다 훨씬 빈번한 푸쉬를 받게 했다. 이를 편의상 ‘비자연적’이라 해두자. 사람의 두뇌에서 도파민이 비자연적으로 자주 분비되는 현상은 사람의 잠재의식을 어떻게, 얼마나 소모시킬까? 현대인의 대다수가 그런 형편을 일상적으로 경험할 경우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디지털 시대의 디자이너는 이제 뇌과학자나 의학자로부터 조언을 구해야 한다. 심리학자인 수잔 웨인쉔크 박사2에 따르면 도파민은 ▲어떤 사건이 일어날 것이라는 구체적인 신호를 좋아한다. 또 ▲그것이 예측할 수 없는 사건일 때, ▲분량이 적고 확실한 만족을 못 주는 정보일 때 더욱 자극받는다. 소셜 미디어의 푸쉬는 뇌의 도파민 시스템을 촉발하기에 최적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

도파민의 중요한 특성이 하나 더 있다. 도파민은 우리를 ‘원하게’ 하는데, 그 원함의 결과를 즉시 얻으면 도파민도 다시 새롭게 분비된다. 자동차 엑셀레이터를 계속해서 밟는 것처럼, 멈출 줄 모르고 계속해서 원하는 뇌가 되는 것이다.

스마트폰과 인터넷 덕분에 우리는 거의 원하는 즉시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누군가와 대화하고 싶을 때 카톡이나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몇 초 후 답장을 얻는다. 뭔가 정보를 찾으려면 검색창에 입력하면 된다. 친구들의 근황이 궁금하면 카카오톡 스토리나 페이스북을 열어본다. 원하는 걸 즉시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 뇌는 다시 뭔가를 원한다. 자신도 모르게 계속해서 뉴스피드를 스크롤하거나, 뭔가를 검색한 뒤 이리저리 링크를 한참 클릭하며 처음 것과 전혀 상관없는 자료를 찾는 것은 도파민 때문이다.

오늘날 그리움이나 기다림이라는 말은 구식이 됐다. 스마트폰을 가진 현대인은 기다릴 필요가 없는 대신, 즉각적 반응이 없으면 불안해 한다. 지나친 도파민은 사람을 녹초가 되게 한다. 푸쉬로 가득찬 세상은 인내력과 참을성이 없는 문화를 만들어낼 것이다.

디자이너는 클라이언트와 최종 사용자 사이의 중재자로서, 상품이 주는 경험으로 사람이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는지를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 이는 편리한 디지털 세계에서 인간적 삶의 균형을 찾는 문제다.

사람이 본래 가진 능력이 스마트기기로 인해 퇴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얻는 자연스러운 삶의 행복이 인위적인 도파민에 의해 포장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균형을 고려한 디지털 혁신은 소비자들에게 더 나은, 혹은 바람직한 가치를 준다. 머지않아 많은 사람들이 이 균형의 가치에 공감할 것이며 혁신가들은 이 지점에서 새로운 성장의 동력을 찾을 것이다.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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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ien Choi
컴텍스트 디자이너 & 컨설턴트

 

1. Arias-Carrión O, Pöppel E (2007). “Dopamine, learning and reward-seeking behavior”. Act Neurobiol Exp 67 (4): 481–488.

2. The Brain Lady Blog, “Dopamine Makes You Addicted To Seeking Information” by Psychology and Brain Science, Susan Weinschenk,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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